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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읽는 현대사] '저 별은 나의 별'에 겹쳐 보이는 두 개의 별빛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아무리 공부가 바쁘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도 누가 누구를 소개해 주고,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자리들은 끊이지 않았다.가까이 지내던 동기 한 녀석도 어영부영 여자가 생겼다.오랫동안의 솔로 동지(?)에게 여자 생긴 일이 속 시끄러운 판인데 녀석은 기이한 태도로 내 부아를 더 돋우었다.
녀석은 한사코 그녀랑 사귀는 거 아니고 그냥 친구라고 우겼다.하지만 여자(현아라고 해 두자) 쪽은 매우 적극적이었다.현아는 어떻게든 다가서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였는데 녀석은 감히!괜히!튕기는 게 아닌가.그러고는 훌쩍 군대를 가 버렸는데 놀랍게도 현아는 28개월 동안 녀석을 기다렸고,제대 후 다시 만났다.
매일같이 도서관에 출근하는 복학생이었던 나를 현아 커플은 끈질기게 불러냈다.짝이라도 맞춰지면 같이 다닐 수도 있겠지만 혼자 덜렁 끼기도 뭐해서 왜 부르냐고 심통을 내기도 했는데 현아는 이런 말로 나를 어르고 달랬다."걔는 네가 같이 있어야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나랑 둘이 있으면 재미없는 것 같고.그러니까 나와 줘.응?"
현아는 독문과였다.그 학교 앞 카페에서 고운 목소리로 독일어 노래를 불러 주었다.(비록 나를 위해 부른 건 아니었지만) 그중의 하나가 가수 윤형주가 번안해 불렀던 <두 개의 작은 별>이었다.그때껏 윤형주의 노래 <저 별은 나의 별>로만 알고 있던 나는 두 번 놀랐다.이 노래가 외국 노래였구나.그리고 두 번째는 제2외국어로 배울 때 무슨 나무를 깎아 붙인 듯 딱딱했던 독일어가 이렇게 부드럽고 구성질 수 있구나.
흔히 독일의 '민요'로 오해하는데 이 노래는 창작곡이다.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천재 소년 가수 하인체 시몬스가 1967년에 발표한 대중가요 <두 개의 작은 별(Zwei kleine Sterne)>이 원곡이다.독일어 가사는 이별을 앞둔 사람이 떠나는 이에게 언제까지나 자신의 곁에 있어 줄 것이냐고 묻자,상대는 하늘의 두 작은 별이 너와 함께 먼 세상까지 갈 것이며,자신이 떠난 뒤에도 그 별을 보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윤동주가 바라본 별빛
훗날 윤형주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윤동주 시인처럼 별에 관한 가사를 써봤다." 우리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윤동주.
윤형주는 그의 육촌 동생이다.윤형주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45년 2월,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차디차게 숨을 거두었을 때 윤동주의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시신을 수습해 온 사람이 바로 윤형주의 아버지(윤동주의 5촌 당숙) 윤영춘이었다.너무도 유명해져서 <두 개의 작은 별>을 외국 노래가 아닌 윤형주의 노래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그런데 윤형주의 '육촌형 윤동주'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노래의 별빛 위로 윤동주가 바라본 별빛도 겹쳐 보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시,<서시>에서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고,별에 스치우는 바람을 노래했다.하지만 윤동주의 시 가운데 '별'이 가장 선연히 빛나는 시는 <별 헤는 밤>일 것 같다.
"(전략)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 (후략)"
윤동주는 그 짧은 생애 동안 별 하나에 사랑을 담아 보았을까.사각모를 쓴 윤동주의 사진을 보면 뛰어난 미남이라는 찬탄이 절로 입에서 흐른다.저 외모에 운동도 잘하고 성품도 부드럽고 거기에 아름다운 시까지 쓰는 문학청년이었다면 그를 따르는 서울의 신여성들이 서대문에서 연희전문 캠퍼스까지 줄을 섰음 직도 한데 윤동주는 안타깝게도 불꽃 튀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여자가 윤동주에게 먼저 호감을 드러내도 수줍어하면서 피했고 여자에 대한 진지한 호감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요즘 말로 '초식남'이라고나 할까.기껏 윤동주의 여자관계를 '밝힌다'는 옛 후배의 전언 수준이 이렇다.
"이화여대 문과 졸업반 여학생이 있었고 그와 협성교회와 바이블 클래스를 함께 했다.동주 형은 물론 나이 어린 나에게 그 여자에 대한 심정을 토로한 적은 없었다.그러나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윤동주 평전>,송우혜,푸른역사)
윤동주가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너무도 아깝게 세상을 떠나고 윤형주의 아버지가 그 시신을 수습하여 북간도로 돌아온 지 단 6개월 뒤 해방이 왔다.윤동주의 친구들은 너무도 안타깝게 죽어간 친구의 기록을 모아 펴내게 되는데 윤동주의 시를 일부 보관하고 있다가 내놓았던 친구 강처중은 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였다.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그 여성도 모르는 친구들도 모르는 사랑을,회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고민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어쨌든 친구들에게 이것만은 힘써 감추었다."
별 하나에 쓸쓸함과 동경과 추억을 담으며 아직 다하지 못한 청춘을 노래했던 시인의 별이 육촌 동생의 노래 속에서 스며들 듯 숨은 듯 또 다른 빛으로 번졌다고나 할까.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신의 별들은 무엇을 말했길래
윤형주의 아버지는 윤형주가 윤동주의 시를 노래로 만드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고 한다."시도 노래다.시에도 음이 있고 리듬이 있고 하모니도 있다.네 잘난 작곡 가지고 시의 고유한 것을 건들면 안 된다"고 딱 잘랐다고 한다.(KBS <아침마당>,오토맥스2017.6.6.)
1400곡의 시엠송과 120곡의 가요를 작곡한 윤형주였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체하는 육촌 형의 시들을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윤동주의 시 대신 윤동주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다.그 노래를 부르며 윤형주는 어쩌면 저 별은 형님 별,저 별은 나의 별 하며 노래를 겹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당신의 별들은 무엇을 말했길래 당신의 시들이 이토록 숨을 쉬나요."
사랑을 토해내지 못하고 간직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사랑은 소화불량 같은 거라서 손톱 밑을 따든 토하든 아래로 내리든 기어코 내보내게 만드는 습성이 있다.하지만 윤동주는 젊음의 소화불량을 꿋꿋이 삼키고 누르고 참았던 것 같다.
바람에 별이 스치우는 소리를 들으면서.잎새에 이는 바람에 마음이 서늘해지면서.윤동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여자는 자신의 아이들이 줄줄 외우고 다닐 <서시>를 쓴 시인이 스스로를 하얗게 태워 가며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죽어서도 몰랐을 것이다.그 생각을 하고 윤형주의 노래를 부르면 언뜻 윤동주의 부드러운 관북 사투리로 부르는 <저 별은 나의 별>이 스르르 얹힌다.
<저 별은 나의 별>을 독일어로 불러 준 현아와 내 친구는 그 이후 맺어지지 않았다.인연이란 오묘하면서 심술궂은 것이라,한창 현아가 열중할 때는 내 친구가 밀어냈고,내 친구가 다가설 때는 현아가 멈칫거렸다.그들의 위기(?)에 내가 다 안타까워서 녀석들을 이어 주려고 애를 쓰던 어느 날 현아가 술을 먹고 축축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기억이 난다."나는 얘랑 잘 안되면 누구를 만나기 힘들 것 같아."
결국 먼저 이별을 선언한 건 현아였고 둘은 오랜 사귐 끝에 자기 갈 길로 갔다.그 후에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그로부터 20여 년 뒤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현아가 죽었단다."
현아는 이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일찍 세상을 등졌고,한참 뒤에야 그 소식이 들려왔다고 했다.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어떻게 죽었는지만 가냘프게 알게 된 옛 여자 친구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카페에서 그녀와 그 후배들이 함께 부르던 독일 노래 <두 개의 작은 별>을 떠올렸다.독일어를 이해할 길은 없고,온라인카지노 총판 벳위즈그저 윤형주의 목소리로 더빙된 노래 <저 별은 나의 별>로 치환됐지만 말이다.
독일 노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노래.가끔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 노래를 불러 보고 싶어진다.별 하나에 사랑을,별 하나에 추억을,별 하나에 쓸쓸함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