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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약 120m 상공.코리아나호텔과 동아미디어센터 사이로 폭 몇 센티미터 남짓한 줄 하나가 팽팽하게 허공을 갈랐다.발아래 도로 위 자동차들이 장난감 블록처럼 작아 보이는 아찔한 높이다.
에스토니아 출신 슬랙라인 선수 얀 루스는 이 줄 위에서 편도 160m 구간을 두 발로 건넜다.그가 움직일 때마다 지상에선 환호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도심 한복판 하늘에 곡예판을 깐 주인공은 서커스단이 아니다.오스트리아 에너지 음료 기업 레드불이다.
답을 찾으려면 2012년 성층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10월 오스트리아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약 3만 8969m 상공에서 보호복과 헬멧만 착용한 채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이 '레드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는 준비에만 5년,비용은 6500만 달러가 들었다.
돌아온 숫자는 유튜브 생중계 동시 접속자 800만 명이었다.중계 화면엔 레드불은 물론,후원사 로고가 폭넓게 새겨졌다.
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역사는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레드불은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무동력 비행기를 타고 물 위로 뛰어내리는 자작 비행기 대회‘플러그태그(Flugtag)’를 열었다.
이후 절벽 다이빙,슬롯 게임 어플에어레이스,슬롯 토너먼트산악자전거 다운힐 등 거칠고 위험한 비주류 익스트림 스포츠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왔다.
TV 광고 시간을 사는 대신,사람들이 보지 않고는 못 배길‘사건’을 직접 만들어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방식을 일찌감치 택한 것이다.
첫 번째 열쇠는‘한국 전통문화’와의 결합이다.루스는 2022년 방한 당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국의 전통 줄타기를 접한 뒤 깊은 매력을 느꼈다고 밝혀왔다.
서구의 현대 익스트림 스포츠인 슬랙라인과 천 년의 호흡을 지닌 한국 줄타기의 교차점을 모색하던 중,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광화문을 점찍었다는 설명이다.
줄 하나에 몸을 싣고 관객과 호흡하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현대적인 고공 액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또 이번 퍼포먼스는 서울시와의 협업으로 성사됐다.
삭막한 오피스 빌딩 숲과 600년 역사의 육조거리가 맞닿은 광화문 상공을 내어줌으로써,서울이라는 도시의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매력을 전 세계에 송출하겠다는 지자체의‘도시 브랜딩’셈법이 맞아떨어졌다.
물론 브랜드의 이면에는 숙제도 따른다.
1984년 출발 이래‘날개를 달아준다’는 슬로건으로 모험과 도전을 팔아왔지만,이사비 지급 토토2014년 미국에서는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든다”는 집단소송 끝에 1300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물어내기도 했다.음료를 마신다고 진짜 날개가 돋지는 않는다는 현실적 한계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람을 계속 허공으로 띄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품의 기능성을 설명하는 것보다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전해지는 아드레날린을 각인시키는 게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전통 줄타기의 서사와 글로벌 브랜드의 콘텐츠 전략,그리고 도시의 마케팅이 2026년 10월의 첫날,광화문 120m 상공에서 하나의 줄로 팽팽하게 엮였다.